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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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제홍 댓글 0건 조회 1,668회 작성일 20-06-13 10:44본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현실의 상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은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계명을 현실 속에서 얼마나 실천할 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무리하게 선박을 개조하고, 규정을 위반하여 짐을 싣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박을 운행하게 한 사람들과 부정한 커넥션으로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눈감아 준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자기들의 야망을 위해서 종교적 이름으로 수많은 민간인, 어린이, 기독교인들을 살해하는 IS를 보고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교묘한 거짓 교리를 만들어 어리석은 자를 미혹하여 대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게 하고, 가정주부들이 가정을 버리게 하는 이단의 지도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뇌물과 정치자금으로 받고도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 하는데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기독교의 윤리는 사랑의 법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윤리를 실현하며 현실 속에서 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통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 현실에서 사랑의 법을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고 포기를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 현실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사랑의 법 적용 타당성을 감상주의적으로 주장한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완전한 사랑의 윤리가 이 세상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으나 초월적인 규범으로 기독교 윤리의 궁극적 목표는 신앙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윤리」<니이버. 박봉배 역>
그리스도인이 사랑과 희생의 법을 실천하며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목표로 삼고 신앙 안에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마태복음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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